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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산길 들길/문화재 이야기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 8, 9번지

문화재 지정현황 : 보물 제93호(1963년 1월 21일 지정)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인 용암사(龍巖寺) 대웅보전 왼쪽 산비탈에 있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은 고려시대 세워진 석불로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세겼는데, 머리 위에 돌로 된 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석불의 전체 높이는 17.4m로 국내에서 가장 큰 마애불로, 원립불의 얼굴 길이는 2.45m, 방립불은 2.36m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매우 거대한 느낌이 들며, 정형화된 불상의 모습보다는 서민의 삶이 묻어져 있는 지방화된 불상이라 할 수 있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연꼴을 쥐고 있고며, 오른쪽의 네모난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두 불상이 동일하다. 구전에 따르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네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전해지고 있다.

고려 제13대 국왕인 선종(宣宗, 재위 1083~1094년)이 자식이 없어 셋째 부인인 원신궁주(元信宮主)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를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명의 도승(道僧)이 나타나서는 "우리는 장지산 남족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배가 매우 고프니 먹을 것을 주시오"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고, 꿈에서 깬 궁주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즉시 이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더니,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선종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이중 둘은 일찍 죽고 선종의 뒤를 이은 헌종(獻宗, 재위 1094~1095년)과 한산후가 있었으니,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조성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탄생설화로 남아있다.

1995년 경기도문화체육과 박홍국 학예연구관이 종래 판독 불가능했던 것으로 취급된 석불입상의 하단에 자리한 발원문을 탁본해서 판독하는 과정에서 '성화(成化)'라는 명나라 연호가 나왔으며, 이는 세조 11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세조의 명복을 비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작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지고 조선시대에 축원문을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 문화재청)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석불을 참배하고 남북통일과 후손잇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위의 사진과 같이 원립불 왼쪽 바위 위에 동자상을 세우고, 그 뒤에는 칠층석탑을 두었지만, 4·19 혁명 이후 하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에 문화재 훼손 비판이 일면서, 1987년 철거하여 요사채(종무소) 오른쪽에 세워두었다가 현재는 미륵전 옆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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