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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산길 들길/문화재 이야기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명 칭 :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安城 七長寺 慧炤國師碑)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칠장리 764) 칠장사 경내

문화재 지정 현황 : 보물 제488호(1968년 12월 19일 지정)

 

칠장사 원통전과 명부전 사이에 난 산길로 약 80m 가량 올라가면 나한전과 함께 비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 국사(國師)였던 혜소국사 정현(惠炤國師 鼎賢, 972~1054)의 탑비이다. 화강암과 흑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비신의 높이는 227cm, 너비 127cm이다. 고려 문종 14년(1060)에 건립되었으며, 비신 중앙부가 절단난 채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5년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얹은 비각을 세우면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 죽산 출생으로, 10세(981년)에 광교사(光敎寺)에서 충회대사(忠會大師)의 제자가 되어 출가하였으며, 17세(992년)에 영통사(靈通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목종 2년(999) 왕명에 의해 대사가 되고, 문종 2년(1048) 가뭄이 들었을 때, 문덕전(文德殿)에서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하면서 기우(祈雨)하자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듬해(1049년) 왕사(王師)가 되었고, 문종 8년(1054) 국사(國師)가 되었으며, 그해 칠장사에서 입적했다.

비신의 상단부 제액에는 '증시혜소국사비명(贈諡慧炤國師碑銘)' 8자를 해서체로 가로 2단으로 새겨넣었으며, 하단의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김현(金顯)이 짓고, 전중승(殿中丞) 민상제(閔賞濟)가 구양순체(歐陽詢體)로 썼다.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비문

비신의 양쪽 옆면에는 보주(寶珠)를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일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왜장인 가토(加藤淸正)가 충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던 중 죽산에 있는 칠장사에 들렸는데, 한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로 베었는데,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자 가토가 이를 보고 겁이 나서 도망쳤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헌종 15년(1674) 당시 한 세도가가 장지로 쓰기 위해 칠장사를 불태울 때 비석도 두 조각으로 깨서 버렸는데, 그가 누구인지 기록에 남는 것을 후손이 두려워해서 앞의 왜란설을 퍼뜨렸다고도 한다.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귀부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이수

혜소국사비의 귀부(龜趺,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비석 받침대)와 이수(螭首, 비석의 몸돌 위에 얹은 덮개돌로 이무기나 용의 모습을 새겨 넣음)는 비신 옆에 따로 분리되어 놓여져 있다. 귀부의 거북은 머리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귀갑(거북의 등딱지)은 육각의 갑문(甲文)이 뚜렷하게 남아있으며, 이수에는 구름과 용을 입체적인 부조로 조각했다.

혜소국사비 비신의 뒷면에는 여러 종류의 낙서를 세겨놓아 보기 흉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