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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산길 들길/문화재 이야기

주령구(경주 안압지 출토)

주령구(통일신라시대, 안압지 출토)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복제품)

 

주령구(酒令具)는 경주 동부 사적지대(사적 제161호)로 지정된 권역 안에 위치한 경주 동궁과 월지(기존명칭 경주 임해전지, 사적 제18호)에서 출토된 유물로,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제2별관)은 19881년 6월 30일 신축한 것으로, 건축가인 고(故)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의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다. 지하 1~2층은 출토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인 수장고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상 1층은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1982년 7월 제2별관으로 개장했으며, 1985년 10월 안압지 상설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20여년 간 사용해 온 전시실의 낙후 등을 개선하기 위한 환경 개선 공사를 위해 2004년 5월 임시휴관에 들어가 7개월 간의 공사를 거쳐 동년 12월 28일, 내부 전시공간을 상하 두 지역으로 구분하여 확장하고, 기존보다 100여점 많은 800여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안압지에서는 기와류 5,800여 점, 토기 등 그릇류 1,750여 점, 목제류 1,1300여 점, 금속류 840여 점, 목간류 80여 점, 철기류 690여 점, 동물뼈 430여 점, 석제류 60여 점 등 총 1만 5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하지만 이 유물들은 자칫 지금처럼 볼 수 없을 뻔 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에서 마련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발굴보다는 준설작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 계획에 따르면 "발굴을 겸한 준설 작업과 임해전지의 경역을 넓히기 위하여 침식된 사유지를 매입하여 나무를 심고, 건물지 초석을 전시하며 환경을 미화한다. 그리고 관광객의 편의를 위하여 전등을 한식으로 세우고 안내판을 설치하며 주위 보호책을 설치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바로 시행되지 못하고, 1974년 11월에 들어와서야 도진건설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준설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여 있던 물을 빼내고 경주사적관리사무소 직원 입회 하에 준설 작업에 들어갔지만, 못바닥에서 쏟아져나오는 신라 유물을 직원 한 두명으로 모두 수습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예상 밖으로 연못을 축조한 호안의 석축이 새로 나타나는 등 예상치 못한 내용이 드러나자, 결국 준설 작업을 즉각 중단하고, 정식 발굴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에 종사하고 있던 경주고분발굴조사단에서 급히 조사원을 차출하여 1975년 3월 25일부터 1976년 12월 30일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도판 101) 186. E18구 목제 주사위 출토상태 - 안압지 발굴조사보고서

 

주령구는 1975년 6월 19일, 서편 호안의 E18구(區) 탐색갱의 바닥 유물층 제거중 출토되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안압지 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나무로 만든 14면체의 주사위로 면의 모양은 사각형이 6개, 삼각(실제로는 육각형)이 8개이며 각면에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으며, 놀이구로 사용한 것 같다. 크기 5.5cm×4cm'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 주령구는 1980년 11월 17일부터 12월 3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안압지 출토유물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되고, 이후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서 상설 전시되었지만 오직 복제품만이 공개되어 진열되었다. 보존상의 이유로 진품의 공개가 제한된 것이 아니라 진품이 불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출토 당시, 주령구는 경질목(참나무)에 흑칠(黑漆)을 한 상태로 오랜시간 뻘 속에 있었기 때문에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사진 촬영과 실측 등 유물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종로구 창성동에 있던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서 즉시 보존 처리에 들어갔다.

 

나무로 만든 것이기에 한꺼번에 강한 빛으로 건조시키게 되면, 뒤틀리기에 서서히 수분을 제거시켜 원형에 아무런 손상이 없도록 처리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전기 오븐에 넣고 건조하게 했다. 자동 전기 조절이 가능하도록 하여 온도가 높아지면 전원이 끊어졌다가 낮아지면 다시 연결되도록 하여 항상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는 장치였다.

 

그런데 이 자동 전기 조절기가 말을 듣지 않아 과열되어 하룻밤 사이에 주사위를 재로 만들었고, 다행히 당직자에 의해 발견되어 화재로 번지지는 않았다. 종로경찰서에서 이에 대해 사고원인을 조사하여 자동 조절기의 작동 불능으로 전기가 과열되어 일어난 사고였음이 확인되고, 보존 처리 담당자의 책임을 묻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 1989년 6월 14일, 지방 신문 1면에 실린 '국보급 신라 문화재 2점 소실'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 기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다가 언론사로 직장을 옮긴 기자가 당시 알고 있었던 이 사실을 보도한 것이었다

 

(도판 175~177) 364~378. E18구 목제 주사위(처리후 상태)와 목제 주사위 14면 문구 - 안압지 발굴조사보고서

 

진품은 소실되어 사라졌지만, 보존처리에 앞서 유물에 대한 사진과 실측 기록을 해 둔 덕분에 지금 우리가 접하는 복제품을 통해 당시 신라시대 사람들의 놀이 문화를 짐작케 할 수 있었던 점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령구는 연회장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놀이도구의 하나로, 각 면에는 주령구를 굴린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지시하는 글(벌칙)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유범공과(有犯空過, 4각면) :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2. 금성작무(禁聲作舞, 4각면) : 소리 없이 춤추기

3. 중인타비(衆人打鼻, 4각면) : 여러 사람이 코 때리기

4. 삼잔일거(三盞一去, 4각면) : 술 세잔을 한 번에 마시기

5. 자창자음(自唱自飮, 4각면)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마시기

6. 음진대소(飮盡大笑, 4각면) : 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7. 농면공과(弄面孔過, 6각면) : 얼굴을 간질여도 꼼짝 않기

8. 양잔즉방(兩盞則放, 6각면) : 술 두 잔이면 쏟아 버리기

9. 월경일곡(月鏡一曲, 6각면) : 월경 한 곡 부르기

10. 임의청가(任意請歌, 6각면) :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를 청하기

11. 공영시과(空詠詩過, 6각면) : 시 한 수 읊기

12. 추물막방(醜物莫放, 6각면) : 못생긴 것을 버리지 않기

13. 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 6각면) : 스스로 괴래만(노래이름)을 부르기

14. 곡비즉진(曲臂則盡, 6각면) : 팔을 굽힌 채 다 마시기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동일한 복제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그 생김새가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전체적으로 흑빛을 띄고 붉은 글씨로 쓰여져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주령구는 흑칠이 되어 있었다는 발굴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실물과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사진자료는 흑백 도판만이 남아있어 주령구 문구의 색상 등 자세한 내용의 확인은 안 되고 있다.

 

주령구(통일신라시대, 안압지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복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