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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여행을 떠나요

경주 당일치기 여행(2) - 감은사지

[ 관련글 ] 경주 당일치기 여행(1) - 문무대왕암

 

문무대왕릉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감은사지로 이동을 한다. 이동 경로상 이견대(利見臺, 사적 제159호)는 이번 여행에서 제외했지만 차량으로 이동하거나 답사를 위해 찾은 이라면 이견대에서 조망하는 대왕암은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다.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의 거리는 약 1.7km로 도보로는 30여분이 걸린다. 여유로이 여행을 왔다면 충분히 걸어볼만한 시간이지만 당일치기로 이후 일정도 여럿이 있는지라 부득이 경주터미널행 150번 버스 탑승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배차간격이 1시간으로 종점인 양남에서 봉길대왕암해변까지는 약 15분이 걸리며 봉길1리와 대본다리를 지나면 감은사지 버스정류소가 나온다.

 

정류소 뒷편으로 난 길을 따라 100m 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가는 길과 앞으로 가는 길이 나오게 된다. 왼쪽으로 난 길은 중문터를 지나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이로 통과하는 길이고 다른 길은 금당터 오른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어느쪽으로 들어간들 상관은 없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감은사지에 서 있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다가오는 느낌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

강당터에서 바라본 감은사지 금당터와 동서 삼층석탑 ⓒ원정연

경주 감은사지(慶州 感恩寺地, 사적 제31호, 1963년 1월 21일 지정)는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이 삼국을 통일하고 동해안을 빈번히 침범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 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그의 아들인 신문왕에 의해 불사가 계속되어 신문왕 2년(682)에 가람을 완성하고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명명했다.

 

『삼국유사』권제2 만파식적조에 수록된 사중기에 의하면 용으로 변한 부왕(문무왕)을 위하여 금당에 휴식공간을 마련하고 금당 동편 통로를 마련하여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며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이었으나 언제 폐사된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감은사의 가람배치는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으로 강당, 금당, 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로 현존하는 삼층석탑이 있음을 밝혀졌고,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배치방식이라고 한다. 쌍탑일금당 배치는 불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 가람배치다.

경주 감은사지 가람배치도 - 발굴조사 개요(1981) ⓒ조유전/고문화 19호

금당터 앞에 자리한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慶州 感恩寺址 東 · 西 三層石塔, 국보 제112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은 목탑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옛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이후 쌍탑 가람으로 가는 신라 석탑의 양식적 근원을 마련한 탑으로 높이 13.34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이뤄진 동일한 양식의 쌍탑이다. 삼층석탑 앞에 서면 그야말로 '우러러' 볼만한 정도의 위엄을 가지고 있다.


화강암으로 구성된 상하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가 한 개의 통돌이 아닌 수십 개에 이르는 부분 석재로 조립되었으며 상륜부에는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보기 드물게 금속제의 찰주가 남아 있다. 찰주의 길이는 3.3m로 노반석을 관통해 3층 탑신까지 꼽혀 있다.

1996년 동탑 해체수리 과정에서도 사리장치가 확인됐다.ㅇㄻㄴㅇㄹ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원정연

경주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원정연  경주 감은사지 동 삼층석탑 ⓒ원정연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는 각기 사리장엄구가 발견됐다. 

동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