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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눈

함백역과의 아름다운 만남

[ 이 글은 침례신학대학교 학보사에서 발행하는 <침신대학보> 제230호(2008.12.16)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

 

11월 25일 함백역 복원공사 준공식 및 국가기록원 제1호 기록사랑마을 선포식에서 함백역 현판 제막식을 가지고 있다 / 침신대학보 원정연

 

1957년 3월 9일 함백역 광장에서는 이종림 교통부장관, 김일환 상공부장관, 다우링(Walter C. Dowling) 주한 미국대사 등 내·외빈과 지역 주민 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함백선 개통식이 성대하게 거행됐다. 개통식 당시의 모습은 대한뉴스를 비롯한 신문과 방송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으며, 오전 9시 서울역을 출발해서 오후 1시에 함백역에 도착한 직통열차는 이날 행사를 위해 철도청에서 마련한 특별열차였다.

 

함백역(咸白驛)은 1950년대 건설된 3대 산업철도(영암선, 함백선, 문경선) 중 함백선(영월~함백간, 22.6km)에 속한 역으로 함백탄전을 비롯해 영월탄전 및 상동광산 등 풍부한 석탄자원을 수송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1993년 함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기능이 점점 축소돼 1998년 1월 20일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2004년 4월 1일부터는 통일호 열차가 운행을 중단하면서 하행선 무궁화호가 1일 1회 정차하였지만 이마저도 이후 중단되면서 더 이상 열차가 서지 않는 역이 되었다.

 

함백선 개통식에 모인 인파 / 개통식에 참석한 김일환 상공부장관이 레일 고정용 쇠못을 박고 있다(1957.5.9) / 철거 전 함백역의 모습(2006) / 철거 직후 잔해만이 남아있다(2006.10.31) / 함백역 복원을 위해 모인 복원추진위원들(2007.1.25) (왼쪽부터 / 함백역복원추진위원회 제공)

 

함백역은 2001년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차태현)와 그녀(전지현)이 소나무 아래에 타입캡슐을 묻었던 장면을 촬영한 두위봉 백운농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영화가 유명세를 타면서 열차가 끊긴 이후로도 함백역에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2006년에는 기차역 마니아가 뽑은 '가볼 만한 간이역' 5곳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건물 노후 및 청소년 탈선장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9월에 철거대상 역사로 결정하였으며, 2006년 10월 31일 당초 계획일정보다 앞당겨 기습적으로 철거해버렸다. 이에 주민들과 철도동호인들을 중심으로 강력 반발하며 철거에 대한 반발기류가 확산되자 정선군수는 11월 7일 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철거에 따른 사과문을 개재하기도 하였다.

 

철거 일주일 후, 주민들을 중심으로 함백역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함백역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함백역 복원에 필요한 3천4백만원, 벽돌 1만2천여장은 정선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성금과 후원으로 채워졌다. 복원된 함백역 내부에는 이들의 명단이 적힌 명판을 부착해 감사를 표하고 있다. 함백역 터에 대한 부지사용 협의를 거치는 동안에도 추진위원회의 관련자료 수집을 위한 발걸음은 분주하게 이어졌다. 철도시설공단에서 보유하고 있던 건립당시의 평면도를 제공받고, 2007년 11월 1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함백역과 같은 날 준공된 태백선 연하역을 실측하여 2008년 2월 23일 설계도면이 완성됐다.

 

함백역 복원 기공식에서 기념시삽을 하고 있다(2008.6.9) / 함백역 내부 공사 현장(2008.7.18) / 함백역 외벽 미장공사(2008.10.9) / 함백역 처마 밑 마무리공사(2008.10.15) /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묻어있는 복원공사(2008.10.22) (왼쪽부터 / 함백역복원추진위원회 제공)

 

2008년 6월 9일 함백역 터에서 기공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함백역 복원공사에 돌입하였으며, 8월 29일에 상량식을 가졌다. 복원 기간동안 147명의 자원봉사자들 다녀가 곳곳에 그들의 노력이 담겨져 있다. 복원추진위원회에서는 당초 10월 30일 복원공사 준공식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10월 8일 함백역과 조동8리가 행정안전부 소속 국가기록원에서 지정한 '제1호 기록사랑마을'로 선정되면서 준공식을 연기했다.

 

2008년 11월 25일 오후 1시 30분, 함백역 광장에서는 유창식 정선군수, 최승준 정선군의회의장 등 기관단체장과 국가기록원 관계자, 그리고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함백역사 복원공사 준공식 및 국가기록원 제1호 기록사랑마을 선포식이 열렸다. 함백역 내부에는 역사 기록관이 마련되어 번성했던 탄광촌의 역사와 관련된 기록물과 함백역이 세워진 이후부터 철거되어 복원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됐다.

 

함백역 준공식 및 기록사랑마을 지정(2008.11.25) / 침신대학보 원정연

 

진용선 복원추진위원장은 "함백역 복원은 국가가 철거한 역사를 지역 주민의 힘으로 자발적으로 복원한 국내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서 우리 지역 주민들이 문화재 복원과 보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힘을 합쳐서 큰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소중하게 얻을 수가 있었다"고 복원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함백역 복원은 단순히 철거된 건물을 다시 만든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함백역에는 조동8리 주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깃들어져 있었으며, 2년 만에 복원된 역사(驛舍)와 함께 주민들이 공유한 지난 50년간의 추억들도 되살아났다. 역을 돌아보던 한 주민은 "그래, 예전하고 똑같이 잘 했네"라며 기억 속에 남아있던 역의 모습을 회상했고, 전시된 자료들을 보며 예전 번성했던 탄광촌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